2009년 7월 30일 목요일

걸인을 스침_2009. 7. 29.

손금 사이사이로 검은 때가 찌든 걸인이 휘청거리며 다가와, 배고픈데 돈 좀 줘요,한다.

작은 지갑을 뒤적거리니 동전 몇 개가 나와 대강 그걸 주었다. 돈을 낚아채듯 돌아선다.

 

차례로 지영, 채플린, 바우만을 떠올린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지영이 미쳐버린 걸인을 마주하고

옷깃을 여미며 발길을 재촉하듯 나도 도망치듯 그와 멀어진다. 걸인의 위협은 수많은 보험상품과

노후보장 금융상품을 먹여살린다. 이 상품을 구입하는 고객님께는 윤택한 삶을 드립니다, 걸식하

는 일은 없지요, 한순간입니다, 추락은 요, 그러니까 고객님, 새 상품이 나왔는데...

 

<키드>. 위층에서 내던지는 쓰레기 더미와 연속하여 떨어져있는 어린아이. 채플린은 아이를 간신히

받아든다. 쓰레기와 어린 아이의 과감한 병렬. 바우만보다 수십 년을 앞서 <쓰레기가 되는 삶>을

예언한다.

 

그와 멀어지고 한여름의 해가 길게 뉘어있어도 한기는 가시질 않는다. 햇빛은 잔인하고 그의 검은

팔은 땀으로 번들거린다. 오늘따라 바람도 불지 않는다.

2009년 7월 24일 금요일

까페 안_2009. 7. 24.


옆자리 여자는 남자의 몇 마디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잔뜩 꼬집는 표정을 하곤 "너 AB형이지?"한다.
혈액교 신도에게 대뜸 혈통부터 의심받은 남자는 "아니야!"라며 성질을 낸다.
최근 10년간 한국은 AB형이나 B형을 성격이상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보균자로 보는 사람이 적잖이 늘었다. 심지어 여자는, "아니야, 딱 너같은 애들은 꼭 AB형이야"라며 골수이식도 안한 남자 혈액형을 바꿔드린다.
여자에겐 용납될 수 없던 남자의 멘트들은, 피의 성격을 파악하여 "그럼 그렇지"로 귀결되고 있다.
저 남자의 누명아닌 누명은 혈액형에 대한 여자의 굳건한 믿음 앞에서 씻을 길이 없어보인다.


(나는 지난 대보름날 귀밝이술도 먹지 않았으므로, 위의 대화들이 내 귀에 흘러들어온 것은, 결코 자의가 아님을 밝혀둔다. 여자분 목소리는 가히 싸이월드 '전체공개' 수준이다.)

2009년 7월 4일 토요일

형광펜 효과

세미나 준비로 책과 다큐멘터리 등등의 목록을 훑고 있는데, 몇몇 심약한 저자와 감독들은 타인들의 이 '훑기'를 어떻게 이겨낼까, 짐짓 걱정이 되기 시작.

 

그러니까 죽을둥 살둥 잠은 자는둥 마는둥 씹는둥 삼키는둥 내새끼 내자식처럼 낑낑대며 만들어 내어놨더니, 이게 있는줄 없는줄도 모르게 존재감이라곤 동네 배고픈 개도 눈길 한번 안줄 모양새같으니, 이걸 어찌할꼬 싶은 것이, 훑어대는 놈 눈을 콱 잡아다 돌리지도 못하게 쫓아다니면서 형광펜을 콱콱 칠하고 싶은 마음을 말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에게, 남이 만든 것들에, 남들 인생에 흥미가 없다는 점을 상기시켜 그 심약한 창작자들은 눈물을 거둘 일이다. 여기저기 흠만 잡히다 존재감도 없이 구석에서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는 '내 새끼'에 대한 건강한 애정법은, 따로 있을 터. 이거 나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듣보잡'의 운명이 내눈에도 보이는 '내 새끼'를, 어떻게 사랑한다?

차도와 인도사이_2009. 7. 3.

 

보도블록과 아스팔트 사이에는 시멘트를 부어놓은 길다란 공간이 있다.

개발자국과 사람발자국이 나란히, 엇갈려, 어지럽게 찍혀있다.

시멘트가 덜 굳은지 모르고 딛은 발바닥은 그 흔적도 황망한 채 굳어있다.

재밌겠다, 족적이나 남겨보자,는 발바닥은 모양새도 기세등등.

반면 견공의 발자국은 한 곳을 향하여 묵묵히 걷고만 있다. 갑자기 딛던 땅이 물렁해졌다고 보폭이 좁아들지도 않고 앞만 보고 사라진다. 진흙에 젖은 줄만 알았던 발바닥이 왜 자꾸 딱딱하게 굳는지만 나중에 곤란해했을 모양새다.

 

굳기 전의 시멘트에 이거, 발서명좀 해볼까, 하는 그닥 고상하진 않은 욕구를

수많은 사람들이 그래 넌 좀 잘났다, 남겨봐라,고 허락해서 형식을 갖춰준게

각종 행사장의 핸드프린팅 아닐까.

 

 

이 사람들, 괜히 신나보이는게 아니라니까.

2009년 7월 1일 수요일

횡단보도 앞 노점상_2009. 6. 30.

 

오이, 참외, 토마토에 쓰여진 표시는 대개 가격표가 그렇듯 위압적이다.

오이 한무더기는 좌우지간 2000원이니까 없으면 꺼져,식이랄까.

그에 반해 "우산/은 3000원/이에요"의 서술형 가격표시는

여지껏 채소팔다가 갑자기 우산팔아서 죄송합니다,하는냥 저자세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할머니는 오이를 들추던 아줌마보다, 여기 우산 다 삼천원이에요? 묻는 학생을 좀더 반겼다,고 생각들던게 단순히 내 오해라면 할말 없다.

애도의 차 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