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금요일

블로그 번지수 바뀌었습니다

블로거 닷컴에 좀처럼 적응을 못하고 있습니다.
백업의 길은 멀고도 멀어 이사에 고민이 많네요.
지금 이곳은 현시점에 멈춰두고 나중에 정리할까 합니다.

일단 번지수만 바꿉니다.
아래 주소로 오세요.





2010년 12월 4일 토요일

단상에 오르는 것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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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의 권위는 수상작이 대변한다. 심사단의 자질이 아무 문제 아니라는 것이 아니나, 그 자질 또한 수상작이 말해준다. 혹은 그래야 모양이 좋다. 수상작 수준이 개차반인데 상의 권위를 말하는 것이 가능한가? 심사위원 개개인이 잘나고 멋진 사람들이라서 그 상이 멋져지는 게 가능한가? 개차반인 수상작을 두고 쓴 멋진 심사평이란 것은 가능한가?

작품이 엉망이면 상도 심사단도 심사평도 마침내 희극적 장면의 익살꾼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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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가 아니란 이유로 쿤데라를 의심해본 적이 단한번도 없듯이, 그 반대로, 무슨무슨 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작품수준에 대한 의심이 말소되는 경우도 단한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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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문씨를 떠올린다. <바셀린 붓다>가 동인문학상 후보로, 결코, 전혀, 절대로 선정하지 않을 것이면서도, 후보로 올려놓은 것에 불쾌감을 느꼈다고 하는 점이나, 한국 문학상은 받고싶은 상이 하나도 없다고 하는 점에서, 지난 십여년 동안 켜켜한 그의 피곤과 피로를 느낀다. 분명 피곤한 일이다.


짜증은 말하고 싶지도 않다, 짜증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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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어나벨>이 받아보니 보이스피싱이더란 말을 수상작가 및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휘장을 걷어내고 말할자 누구인가. 누가 그 피곤과 피로를 이겨내고, 짜증내지도 지치지도 않고 말하며, 단상의 광채에 눈멀지 않고 존재해줄 것인가.



2010년 12월 2일 목요일

낮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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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배운 것들의 구할팔푼이 쓸모가 없다는 것, 어쩌면 가나다라 떼고 안넘어지게 걷는 법 잘 배웠으면 그 다음은 학교에 기대할 것도 실망할 것도 별반 없다는 것, 이런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학교 담장을 넘어나오기가 두려워지는 것은 무엇이냐. 쓸모없는 것을 붙들고 그것만 쳐다보느라 귀닫고 눈 어두울 적의 그 깜깜하고 갑갑한 느낌이 좋기도 하다면, 이게 그저 매저키스트의 궁색한 푸념만은 아닐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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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낭비를 견뎌내는 것이 업, 숙명, 팔자, 그런 류도 있을 것 같다는 말로, 또다시 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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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을 이어가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늘상 저 방구석의 깜깜하고 갑갑한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고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불쑥불쑥 열두번 곱하기 열두번으로 드는데,

퇴근하고 그토록 원하던 깜깜한 방에 도착하면 꾸벅꾸벅 졸고 앉았는 상태에는 복장이 터져 팔짝팔짝 뛸 판이다. 그럼에도 쏟아지는 졸음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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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 길들여진다는 것은 밤을 그리워하며 낮을 버티다가 정작 밤을 맞으면 낮의 피로를 견디지 못하여 잠이나 자는 날들, 그 실망에 무두질 당하는 것이다. 희망의 각질제거에 효과적이다.

 

 

2010년 11월 20일 토요일

송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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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같은 강물 위에 송어가 뛰노네

살보다 더 빠르게 헤엄쳐 뛰노네

나그네 길 멈추고 언덕에 앉아서

거울같은 강물 위의 송어를 보네

거울같은 강물 위의 송어를 보네


한 어부 산기슭에 낚싯대 드리우고

뛰노는 송어들을 낚으려 하였네

그것을 내려보며 나그네 생각에

이렇게 맑은 물에 송어가 잡힐까

이렇게 맑은 물에 송어가 잡힐까


마침내 그 어부는 꾀를 내어

흙탕물을 일으켰네

강물 위로, 흐려진 강물 위로

송어는 낚여 올랐네

언덕의 나그네는 마음이 아팠네

언덕의 나그네는 마음이 아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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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사람을 잡을 때에도 혼탁하게하여, 흙탕물을 일으켜,

제놈이 원체 살보다 더 빨랐을지라도, 멍청해진 물속에서 분간하지 못하고 미끼를 물도록,

마구 어지럽히는 것이다.


그것을 내려보며 나그네는, 그대로 언덕의 나그네이므로 마음만 아프고 별수가 없다.

강물 위로 뛰노는 모양이 분명 마음을 잡아 끌었을 텐데도, 그것은 송어를 놓아줄 수 있도록까지는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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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내 스스로 낚이지싶게 마음이 흙탕물같다. 마음 쓰는 모양도 차차 더럽다.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도록 어지러운 와중,

이 모든 고민이 참 낭비다 싶었고, 마침내 언덕 위로 기어올라 마음만 아프고 별수없는 나그네 행세를 자처한다.

 

2010년 10월 31일 일요일

[고양이의 이면] #2


- 비열한 얼굴

- 귀와 팔에 크레파스 똥이 묻었다. 모나미볼펜에 견줄만큼 배변량이 굉장하다.

2010년 10월 29일 금요일

[고양이의 이면] #1




이면지 + 사은품 크레파스.
동거묘 무아.

포스트 통곡물 시리얼 박스에 크레파스 사은품이 붙어있어 그려보았다.
괜한 사은품으로 시리얼 가격을 높여놓았을까봐 걱정이 되었으나
괜한 걱정일 만큼 크레파스 품질이 형편없었다.
발색이 아주 더러워서 마음에 들기도 한다.

박제가 되어버린 파리를 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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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도서관에 신청해서 본 책.
행간에 파리가 죽어있는데 가만히 보니 시체가 아니었다.
아글쎄 인쇄된 파리의 주검이라지.
리을에 거꾸러 붙은 자세로 짜부러져 몇부에나 찍혀나갈까.

파리야, 행간의 감옥에서 도망가라, 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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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간의 감옥에 갇혀보자, 하고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매번 그렇다. 실패를 기록하는 실패 자체로서의 글.
다만 짜부러지기 전에 퍼덕거릴 따름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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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의식을 못떨치는 거야 쿨하지 못해 미안하면 그만이련만
실제로 부채가 쌓이면 똥구녕에다 불을 놓는 생활이 된다. 항문을 통한 화형을 맞이하며 에헤라디야 부채춤이나 추는 거다.

그러나 말만 이렇게 하고 간밤엔 머리가 숭덩숭덩 빠져서 정수리에 주먹만한 땜빵이 생기는 꿈이나 꿨다.
프로이트도 융도 다 필요없이 이럴땐 운세사이트의 두루뭉술한 해몽이 아주 적격이다.
나쁜 말이면 안 믿자고 보지만 결국 남는 건 흉몽의 그림자라니, 오호 통재라.


행간과 부채의 감옥에서 함께 탈출하자구나, 파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