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내가 있는가, 내가 보이는 걸까, 저 사람은 나를 스쳐지나간 것도 모르겠지.
길을 걸으며 내가 안보인다는 생각을 한다. 대여섯 살부터는 줄곧 버릇처럼 해왔다.
극적으로 우울함을 연출하던 십대 중반에는 이 생각을 전면배치하기까지.
그래서 처음 도둑질을 계획한다; 슈퍼에서 물건을 그냥 가지고 나와보자, 잡히면 내가 보이는 거겠지.
내가 가지고 나오려던건 칫솔이었다. 칫솔도 없이 살 형편은 아니었다. 정말 있어보이는 칫솔, 그러니까 앞머리에 형형색색의 이를 특별히 잘 쑤셔줄 것 같은 특수모가 배치되고 잇몸이 피안나도록 모질이 부드럽고 손잡이는 안미끌어지는 탄성좋은 재질로 된 뭐 그런 칫솔도 아닌 싸구려 칫솔이었던 걸 보면,
칫솔 자체가 내 물욕을 자극한 것은 아니었다.
내 어깨를 잡아채서 "계산 안했지"라던 마트직원은 내게 반성문을 쓰게 했다.
잘못했습니다, 난 내가 보이는지 알고싶었어요,
이 두 문장에서 뒷 문장은 영 안먹힐 것 같아서(핵심은 바로 거기 있는데도!) 뒤는 안쓰고 앞만 한 백몇 번 쓰고 풀려났다. 기껏 쓴 반성문은 본체만체하고 직원은 내 이름이 자기 애인하고 비슷하다며 부모님한테 연락않고 한번만 봐주겠다고 했다. 와, 낭만적이다. 같은 것도 아니고 비슷해서라니. 살면서 이름 덕 본 건 그때가 처음이다.
잘못했습니다 반성문 백 번 써봤자 비슷한 이름 앞에선 별수없네.
쿠엔틴 타란티노는 어린시절, 마트에서 레너드의 소설을 계산않고 나가다가 감방신세를 졌다고 한다.
나는 왜 '있어보이게' 소설을 가지고 나오지 않고 고작 칫솔이었나.
내가 보이는지 안보이는지 굳이 칫솔 아니고 책, CD, 명화도록 등등, 그러니까 나중에 그게 책을 너무 읽고싶어서, 음악이 너무 좋아서, 좋은 그림을 보고서 매혹당한, 장차 큰 예술가가 될 사람의 철없던 시절의 일화 따위로 아름답게 오해될 수 있는 물품이 아니고 왜 칫솔이냔 말이다.
어린 시절, -이런 말이 성립이란게 된다면-악의없는 도둑질을 할 때,
그 품목이 무엇이었나가 미래를 결정하는 걸까, 하고 영양가도 없는 생각을 문득.
그렇다면 난 망했군.
치과의사, 치위생사 참 할 것도 많건만 나는 이빨 교정만 당해봤다. 칫솔로 운동화나 빨자.
칫솔 도둑질로 마트 직원에게 쟝자끄님이 '보이는' 게 드러났지만, "그 품목이 무엇이었나가 미래를 결정"하진 않았군요. 그러니까 미래는 '보이지 않은' 게 드러난 셈이네요. 그렇다면 하나의 다행이군. 어쨌거나 치과라는 "교정"시설에 드나드는 걸로 칫솔 도둑질의 대리 처벌(?)까지 치뤘으니, 그렇다면 둘의 다행이군.
답글삭제'칫솔'을 선택했다니 장자끄님이 약간 소심한 분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ㅎㅎ
답글삭제보이는지 안보이는지 친구에게 물어보지 그랬어요~귀엽습니다.
@세이홍 - 2009/06/23 23:12
답글삭제약간이라뇨- 소심하지 않은 구석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