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하기엔 좀 성가시게 내리는 비를 우산없이 맞고 돌아오는 길에, 얼굴과 머리털 위에 흩뿌려진 빗방울의 감촉이 낭만적이라기엔 을씨년스러워 가을도 넘어선 겨울인가 하는 뻔한 생각을 하며 편의점에 들렀다. 편의점. 화개장터 이후로 엄마 아버지만 빼고 있을 건 다 있는, 24시간 지나치게 환한 이 곳. 환한 조명 탓인지 편의점 거울은 사람 유난 초췌하게 보이는 기능이 엘리베이터 거울 다음급은 된다. 눅눅해지고 죽죽 빗금이 간 저 얼굴은 누구냐. 거울 속에 흔들리는 내 눈을 내가 피하며 컵라면 몇 개와 주전부리용 과자 두어 봉지를 사들고 나왔다. 신호등 불을 기다리며 선 건널목에서 한산한 도로를 부앙 하고 달리는 자동차가 바람을 일으키고 지나가자 한기가 선뜻한 것이 감기면 곤란하다, 생각한다. 돌아와서 소변을 보니 오줌이 뜨겁다. 소변이 뜨겁게 느껴지는 것은 몸살 감기의 자가진단 1단계이다.
목에 수건을 두르고 잠을 청하려는데 낮에 과하게 먹은 돈까스와 컵라면의 잔재가 배 안을 휘집고, 속이 가히 좋지 않다. 이런 더부룩함은 글을 끄적거릴 때 약간 성가신 편두통처럼 나와 애증의 관계를 맺고 있다. 증은 알겠는데 애를 할 건 무어냐, 더부룩함따위를? 여보게, 리듬과 정량에 대한 감각을 잊어 그렇다네. 채 씹지도 않은 입안으로 와구와구 숟가락을 놀리면 더부룩하지. 위란 것은 자네 주먹만이나 한데, 와르르 쏟아넣으면 탈이 날밖엔.
명치께를 연속하여 쓸어내려봐도 가스는 트름으로도 아래 방귀로도 안나오고 가운데츰을 가만히 누르고만 있다. 이 느낌이 마냥 괴로운 것은 아니다. 점심무렵 바삐 놀린 숟가락 건너편의 인물과의 시간이 기억나는 것이니, 자학적인 방법이나마 회상의 도구라고 여겨나 보자. 물론 이건 이 나이 먹드룩 체하지 않게 밥도 제대로 못먹는 나를 벌하지 않기 위함이다. 걔좀 고만 혼내, 주눅든거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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