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함께 살 때, 교감하는 순간에 느끼는 감격과 보람을 동거의 동력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생각해보면 그런 경우란 너무도 기나긴 고회의 시간 끝에나 온다. 어떤 사탕이 죽여주게 맛있다고 들었고, 아직 콩알만큼을 시식해보았을 뿐인데, 다음 사탕을 먹게되는 순간이 9년 후라는 말을 들은 것과 같이 사지가 조금 허탈해지는 것이다.
오히려 감격스러운 것은 '아, 얘랑은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구나'에서 온다. 고양이 발을 붙들고(이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니가 잘 놀다가 갑자기 발톱으로 나를 긁는게 싫거든, 그러지 좀 말자,라고 아무리 간곡하게 부탁해도 고양이는 눈을 모로 세우고 손을 긁고 사라지는 순간처럼. 말의 영역이 조금도 먹혀들지 않는 상태를 경험하는 것이 꽤 각별한 것이다. 내 고양이와 나는 교감과 화합의 순간으로 수렴할 필요가 없다. 하면야 좋겠지만 애써 화합과 평화를 이마에 붙여두고 눈치보지 않아도 괜찮다. 각자의 구석에서 서로 노려볼지언정, 어떤 상대와 말이 지독하게 안통하는 경험은 필요하다. 말이 안먹힐 때 어떤 것은 감내해야하고, 어떤 것은 포기해야 하며, 사실 이런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니 스트레스는 덜 받는 편이 좋다는 것도.
우린 어쩔 수 없어,식의 냉소하는 버릇만 끼어들지 않는다면 얻을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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