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2일 목요일

청소


방청소는 죽기 전까지 깨우칠 자신이 없는 형이상학적 개념이다. 깨끗한 방이라는 이데아는 신비의 강 쯔유쯔유를 넘어 저 멀리에 있는데, 나는 하냥 동굴 벽의 그림자를 "와 재밌다"하고 감상하는 지경이다. 청소를 한 지 3주쯤 지나고 내가 오르내리는 계단에 슬슬 먼지 발자국이 찍히기 시작하면 드디어 청소를 할 때인가,하고 할일 리스트 155번에 체크해두는데, 나는 할일 리스트 1번을 일년 내내 시작만 하는 사람이므로 155번은 마치 정원 20명의 지원 대학 학과 예비합격자 1155번이나 마찬가지, 아 그러니까, 늘상 "접자"는 쪽으로 그치고 방안은 카오스가 되어간다.


극적으로 방청소를 결정하고 호기있게 널린 이불을 개켜 한쪽에 치워두려는 사건이 생길 땐 늘상 이불에 붙은 무수한 고양이 털을 발견하는 수순을 밟는다. 이대로 이불을 개켜둔다면 바닥을 아무리 쓸어도 소용없을 것이라며 이불을 툭툭 터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다는 듯 쭈그려 앉아 깨작깨작 테이프로 고양이 털을 떼어낸다. 이때 잊어서는 안될 문장 하나. "당신이 아무리 긴 테이프를 갖고 있다해도 고양이 털을 모두 제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와 고양이털과 이불만 우주에 남겨진 양 귀도 닫고 털을 떼다 하루가 간다. 그리고 다음 날은 방청소가 다시 리스트 155번에서 가물가물하게 깜빡이는 것이다.


기적적으로 다시 방청소를 시작하는 다음 날이 있거든, 창문 근처에 펴둔 빨래건조대를 접어 한켠에 두려다 건조대의 알루미늄대가 형편없이 휘어 도저히 접히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하고 구겨진 살을 펴보려 용을 쓰다 손을 다친다. 이렇게 피를 보고서는 도저히 방을 치울 수 없다며 손을 싸매고 마음이 상해 돌아눕는 것이다. 옷장을 정리하자면 이 옷은 버릴까 어쩔까를 꼭 입어보고서야 결정하는데, 그러다보면 유행이 몹시 지난 옷들, 몸에 비해 작아진 옷을 입고 한참 바보 흉내를 내고, 탈춤을 추고, 가급적 그 옷이 웃겨보이게 온갖 포즈를 취하는데 각 옷마다의 공연시간은 짧게는 1분에서 길게는 10분, 관람자인 동거인 언니가 웃음이 빵빵터지면 연장공연도 불사. 이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가까스로 계절옷/ 기증할 옷/ 버릴 옷으로 구분한다.  옷장의 2/3이 비었을 무렵, 어느 순간부터 구분을 반대로 해두고 있었음을 발견하고 의욕을 상실한채 다시 꺼낸 옷을 전보다 더 카오스 상태로 옷장에 밀어넣기 시작한다. 옷장이야 저 혼자 정글이 되건 말건 책장을 치워보자 하다간, "어머나이책도있었어-무슨내용이더라-우왕굿재밌네-다시읽어볼까-(이것도인연이지)"를 무수히 반복한다. 청소하던 작자는 수북하게 쌓인 책 위에 걸터앉아 죙일 읽고 앉았는 것이므로, 방을 깨끗이 치우자는 종전의 목적은 어디로 가고 나는 방바닥에 책으로 된 종유석 기둥만 똑똑 만들고 새벽이 되어선 심장마비라도 온 사람처럼 책더미 위로 쓰러지며 잠이 든다.


늘상 주변이 이런 고로, 이불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정도, 책이 무게 중심을 뽐내며 쌓여있는 정도가 적당히 유지되어야 마음이 다소 편하다. 그렇다고 먼지 하나 없이 반듯하게 청소된 타인의 방에 가서 아노미상태로 인한 두통을 호소하지는 않는다. 나한테 방청소를 강요하지 않는 한, 타인의 깨끗한 방을 함께 누릴 뻔뻔한 낯짝을 가지고 있으므로 고약하게 일부러 어지럽히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방을 일부러 어지럽히지 않는다면서 왜 내가 3일만 지낸 곳이면 카오스의 방이 되느냐 물으면, 내가 그걸 몰라 방이 이모양입네다, 하고 대답할밖엔.



댓글 3개:

  1. 신기하죠. 저도 보면 언제나 할 일 리스트를 메모지에 빼곡히 적어놓는데요,(어쩔땐 하루에 10개씩 적을때도 있는데 3개도 못 지키지만요.) 언제나 1순위만 반복하다가 하루가 끝나버려요. 고것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지만요.

    장자끄씨 글을 읽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에게 방청소가 '우선순위'에 오른적조차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얼굴이 화끈거리네요. 게다가 이것저것 모아두는 걸 좋아해서 '왜 굳이 이걸 치워야돼?'하는 막연한 생각을 항상 하고 있기도 하구요. 네, 오늘도 제 방은 머리카락이 카펫을 이루고 있습니다..

    답글삭제
  2. @havaqquq - 2009/10/23 05:59
    링크 걸어준 글 잘 봤습니다. 쏟아져내린 씨디와 책들보다 눈에 밟히는 것은 저 고양이 ! 코끝에 점이 있나요?



    어떤 무관심은 지나친 관심의 한 끝에 있지 않을런지요, 그러니까, 맥북앞에 그냥 앉아있던 것은 아닐테니까요ㅎ 그럼 뭘했느냐, 뭐가 남았느냐는 '다음에' 얘기할 문제. 네, 전 방청소와 더불어 자기반성도 저 방끝으로 밀어두고 있는 겁니다 ㅎ

    답글삭제
  3. @trimm trabb - 2009/10/24 04:06
    더러운 방은 누가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부끄럽지도 죄스럽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그러니 얼굴이 화끈거리는 건 다른 일에 양보하셔도 ^^



    머리카락 카펫, 저도 좋아합니다. 싱크대 개수대에서 푸른 이끼가 저탄소 녹색성장만 안하면 더 좋겠어요 ㅎ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