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9일 목요일

발이 시렵다

-
몇년 전, 나는 겨울이 좋다, 겨울이 좋은 이유는 따뜻하기 때문이다, 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던 사람을 알고 있었다. 관절염만큼 지긋지긋한 수족냉증을 앓는 나로선 게 무슨 헛소리뇨,로 응대할 뿐이었으나 그의 계절에 관한 취향 선언은 잊을만하면 신경을 긁어대었다. 겨울 좀 좋아하는게 무슨 잘못이며 대체 무슨 신경 긁힐 일인가 하면서도 난 왜 배알이 꼬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전 책에서 읽은 구절이 그때 왜 심사가 뒤틀렸었나를 알려주고 있지 뭔가.

"겨울이 좋다고 하는 사람은 자기가 겨울을 날 준비가 된 것을 자랑하는 것이다."


-
심지어 무릎을 쳤다. 익키! 이런 까닭이로세. 겨울만큼 벽 두께의 차이를, 날림으로 지어진 집과 살기 좋은 목에 제대로 지어진 집의 차이를 선뜩하게 알려주는 계절도 없다. "겨울이 좋다"를, 심지어 "따뜻해서 좋다"를 읊어대는 그 사람은 취향 하나를 드러내면서 나는 좋은 집 살지롱, 안좋은 집에서 겨울 나기에 힘들어본 적도 없지롱, 뜨끈한 히터 나오는 차도 있지롱, 등에서 땀날 정도로 좋은 외투도 있지롱,을 일격에 알려준 것이된 셈이었다.

..... 저 자랑질이 다 맞는 말이었다는 것이 왠지 확신을 심어준다.


-
나잇살 먹어도 숨겨진 '느집엔 이거 없지?'를 마주칠 적마다 입이 댓발 나온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비 소식이 있고, 나는 겨울은 무슨 수로 버틸 요량인지 벌써 발이 시렵다.


댓글 2개:

  1. 사시사철 혀가 축 늘어질 정도로 더운곳에 사는 나로서는 이젠 따뜻하다는 느낌을 잊어버릴정도입니다. '아 따뜻해'는 추운겨울 설설끓는 아랫목에서나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

    답글삭제
  2. @사가아빠 - 2010/09/14 01:59
    더운 곳에 오래 살면 감각은 어떻게 재배치 되나요?



    짐작해볼수록 궁금하네요.

    한국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어서 이국에 대책없는 환상,까지는 아니어도, 뭐랄까 상상만 해보자니 막연함이 베일처럼 드리워져서 꽤 뽀샤시효과를 주거든요.

    다 괜찮을 것 같은. 여기만 아니면(?)...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