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7일 금요일

신도림역 부근_2009. 8. 5.

사람들이 아주 빽빽하게 오가는 곳이 아니고서는, 대개 팔벌려공간 정도는 앞뒤로 확보해주는 것이 보행자들 간의 암묵적 약속이다. 뒤따르는 놈은 앞서가는 놈의 발뒤꿈치를 밟을 정도로 가까이 따라가지 않으며 옆사람 팔에 닿을 만치 붙지 않는다.

 

이 '보행자 반경'의 투명선을 성큼, 넘어서는 사람들이 있다. 취객과 '도를 아십니까'.

취객은 보행자 반경을 지킬만큼 여유가 있어보이지 않으며 (그는 달겨드는 땅과 벽을 피하기에도 바쁘다), 그러니 '술이 웬수'라고 읊조려주면 서로의 정신건강에 좋다.

 

요즘 후자, 그러니까 '도를 아십니까' 류의 사람들의 공격성이 유난히 강해졌다. 그 접근 전술이 다채로운 것은 진즉에 알고 있다. 기가 맑다 하다가 팔뚝을 잡거나, 길을 묻다가 팔뚝을 잡거나, 짐 좀 잠깐 들어달라다가 팔뚝을 잡거나, 심리테스트 중이라며 검사지를 내밀다 팔뚝을 잡거나, 팔뚝을 잡거나.

그런데 오늘은 유난 육탄전이다. 치한 선발 기준에도 손색 없을 만치 바짝 몸을 붙이는 것은 물론이요, 잰 걸음으로 지나치는 사람 손목을 홱 채여 붙들고, '내귀에이어폰이보인다면내가반귀머거리인건알겠지요' 재스쳐도 간단 무시.

내 앞을 걷던 여자는 다른 생각을 하며 걷다 갑자기 붙들렸는지 놀라 비명을 꽥 질렀다. 어머 많이 놀라셨어요, 하며 놀람과 공포와 짜증으로 버무려진 여자 얼굴에 대고 하하 웃는다. 원 저 사람, 붙임성하곤.

 

여자를 놓아 주고 뒤에 오던 내게 잽싸게 다가온다. 나는 두 팔로 크게 손사래치며 지친 표정으로 "됐어요"라고 말해보아도 끝내 손목은 한번 붙들고 놓는다. (<프리그립운동>인가?)

 

이들의 육탄전에는 애석하게도 별 대응법이 없다. 걸어오는 말을 진지하게 듣고 따라가서 냉수마찰 후 조상님께 제사를 20만원에 올리고 와도, 맞서서 이런 짓이 얼마나 공격적인지에 대한 설교를 늘어 놓아도, 이기는 축은 못된다. 그저 무시하고 돌아서는 게 상책이다 싶어도, 놀라고 불쾌하고 피곤한, 감정적 부산물을 처리하는 것은 내 몫이니, 역시 지는 꼴. 반드시 이기자고 하는 소리도 아니건만, 늘 지니까 이거 슬슬 배알이 꼴린다.

댓글 4개:

  1. 프리그립운동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글을 읽으니 매일 진다는 느낌에 공감이 갑니다.

    다음에 잡히면 인상쓰면서 욕을 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불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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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Lifelog - 2009/08/07 14:54
    간혹 인상쓰면서 욕하는 분도 계시던데,

    그 얼굴에도 하하, 웃으면서 "기분나쁜일 있으세요?"

    이러는 통엔, 이길 장사가 없다는 ㅎㅎ



    모쪼록 '안마주치는' 행운이 함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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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지인중에 말쌈(논쟁)하기를 좋아하는 분이 있는데 '프리그립운동'하시는 분들 이분 만나면 임자 만나는 것입니다.

    아예 다방까지 데리고 가서 변증법이 어떻고 유물론이 어떻고 하다보면 열에 열은 다 꽁지는 다 빼놓고 도망간다고 하는데 한때 한 지역에서만 머물렀으니 그 어느 다방에는 이들이 도마뱀꼬리처럼 떨궈놓고 간 꽁지가 한둘이 아니었을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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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사가아빠 - 2009/08/27 08:20
    그분, 보기드문 열정가이시네요 :)

    말빨로 물리칠 자신도 없는 저는, 대체 뭘하면 좋을지.



    그분께 저희 지역도 원정오십사, 부탁드리고 싶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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