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4일 목요일

무력함의 얼룩

외할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광주로 향했다. '호상'이라는 것. 늙어 병들어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고, 적당히 많은 세월을 겪어내다 돌아가는 것. 옆 분향소에 화재로 죽은 부부가 있었고, 때문에 더 호상이다 싶었겠으나, '호상'이라는 말은 자식들 입에서 나오건 지나가는 입에서 나오건, 섭섭할만큼 냉정한 구석도 있다. 그럼에도,

 

한참을 흐느끼다가도 오며가며 하는 농담에, 온 일가가 모인 자리에선 응당 쏟아져 나오는 자식자랑들에, 와르르 웃다가도, 또 끼니에 밥 한 술 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사람들은 감정의 이 끝과 저 끝을 비틀비틀 흔들리며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다. 이 끝은 응당 당연하고, 저끝도 비틀거리나마 파도처럼 오갈 수 있는 것은 '호상'이어서겠지. 아니, 그럼에도.

 

장례식장은 온전한 무력함을 느끼는 공간이다. 망자와 가족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끝과 저 끝을 비척대며 애도의 과정을 찬찬히 걸어가는 것만을 한다면 할 수 있다. 엄마의 삼베매듭이 꽂힌 푸석하게 흩어진 머릿무새가 마음을 찔러, 바쁘게 일손만 도왔다. 상여소리를 들으며 장지로 향하던 길엔 노자돈을 실랑이하느라 멈춰서는 중마다 쏟아지는 햇빛아래 원숭이처럼 주르륵 붙어서서 앞 사람의 검은 상복 위에 붙은 먼지만 살살 떼어주곤 했다. 문객에게 대접하던 육개장 국물이 튄 자국은 손톱을 세워 긁어도 가루만 날리고 얼룩은 가시지도 않았다. 봉긋하게 솟은 봉분을 보던 그 때, 땀에 절은 상복이 등판에 달라붙어 있던 느낌을 따로 새겨둔다.

 

 

2009년 9월 18일 금요일

전단지 아주머니_2009. 9. 18.


교차로 건널목의 신호등이 번갈아 켜지는 길에, 한 아주머니가 전봇대 뒤에 커다란 쇼핑백을 기대 세우고, 그 안의 전단지를 한뭉치 집어든다.  곧 길 한가운데로 선다.

퇴근시간이라 말쑥한 차림의 직장인들이 이쪽 저쪽으로 무리지어 많이도 오가는데, 아주머니 손에 전단지가 당최 줄지를 않는다. 아주머니는 부끄러운지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도, 전단지를 선뜻 내밀지도 못하고 시선만 흔들흔들하며 서있었다. 숙달된 전단지 배포자는 커다란 길에서도 유능한 골키퍼처럼 좌우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살짝 막아내, 그 손아귀에, 그가 받을 맘이 있건 없건 가차없이 전단지를 찔러넣는 뻔뻔함이 있다. 이 아주머니는 그러기엔 너무 수줍다. 저게 지금 뭘 내밀고 있는 건가 싶게 살짝 종이를 들어 건네보나, 행인은 아주머니를 밀쳐내듯 지나간다. 갈수록 쑥스러운 듯 그저 발끝만 탁탁 바닥에 꽂는다.

어차피 전단지를 나눠줘야 할 살림살이라면, 저 아주머니가 좀 더 빨리 뻔뻔해지는 것이 나을 것이다. 사람들은 전단지 아주머니의 얼굴 따윈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 괜한 전단지 한 장에 자괴감이며 부끄러움을 담고 서 있지 않기를. '못하겠으면 관두지'라는 말은 못하겠으면 관둬도 될 형편의 사람에게나 쓸모있다.

부동산이 많던 길_2009. 9. 17.

뉴타운이니 재개발이니 말이 많은 곳이라 부동산이 무척 많다.

ㅡ 로또 부동산, 부러나 부동산, 한몫 공인중개사.

이런 편이 차라리 낫다. 땅이나 건물을 부지런히 알아보고 매입하는 것은 당연히 로또 맞은 듯한 돈벼락을 위해서이고, 내 재산이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는 모양을 보고 싶은 것이며, 한몫 잡아보자고 하는 것이라고.

저런 곳에서는, 저는 땅과 집을 '사랑해서' 많이 사둡니다,와 같은 심신허탈해지는 기만의 말은 안할 것이다, 적어도.

2009년 9월 17일 목요일

기분전환

스모키 아이 메이크업으로 기분 전환을 해보세요, 보습 미스트는 건조한 오후에 확실한 기분전환을 해줄 거에요, 라는 잡지 문구가 보인다. 우울한 날엔 속눈썹을 붙이고 과한 화장을 한다는 지인 B양이 있다. C양은 매장 직원을 괴롭혀가며 쇼핑을 하고 나면 우울한 것이 한결 좋아진다고 했다. 기분전환의 세계.

뭘 자꾸 전환하라는 건지 새삼 심통이 난다. 우울한 감각을 유지해야한다던가, 늬들이 말하는 건 다 개수작이니 집어치우라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기분전환이라는 말에 담긴 곤궁함에 신경이 날카로울 뿐이다.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테니, 각자 기분이나 바꿔보죠, 가을 색의 그윽한 눈매로, 촉촉한 피부표현으로, 엣지있는 패션 아이템으로, 어때요.

기분전환을 종용할 때, 무던히 기분만 전환해야하는 인간도 있으며, <만병통치약-기분전환>이 듣지 않는 내성이 발성할 때, 도무지 전환될 수 없는 무력감에 휩싸인다는 것도, 좀 알아주었음 하는 것이다. 붙인 속눈썹을 떼내고 티슈를 검게 물들이며 화장을 지울 때 B양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곤 한다는 것과, 쇼핑백이 자꾸 무거워지는 것은 그저 오래 돌아다녀서가 아님에 한숨을 내쉴 C양의 귀가길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저 잡지 기사를 쓴 기자에게 이런 소릴하면, 과도하게 편향적인 시선으로 보시네요, 스트레스는 안티에이징의 적이니 기분전환 좀 하시죠, 할 것 같아 무섭다.